







드라마 속 황태자에서 영화 속 케이크 숍 주인으로 변신하는 주지훈과의 영상 인터뷰
VG// 차기작으로 영화 <앤티크>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지훈// 타이밍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 당시의 마음상태가 잘 반영된 배역이거든요.
VG// 달변가 사장님 역할이죠? 지훈// 네. 근데 어설퍼요. 잘 속일 것처럼 얘기하지만 결국 못 속이는, 모자란 너구리 같은 그런 느낌이예요.
보시는 분마다 감정선이 다르니까 제가 더 설명하면 영화를 보는데 선입견이 생길 것 같아요.
VG// 오늘 <보그걸> 촬영은 어땠나요? 지훈// 모델 일 할때는 워낙 다양하고 액션을 많이 취해야 하는 포즈를 연출해야 했기 때문에
이렇게 루스한 포즈들을 취하 는게 사실 힘들어요. 제 안에 담긴 다양한 변화를 보여줄 수 없으니까요.
VG// 이번 촬영에 아쉬움이 남지는 않나요? 지훈// 제가 지금<앤티크> 촬영 때문에 수염이 있잖아요. 그래서<보그걸> 컨셉트에 어울리진 않을까 걱정을 했어요.
웃으시는 거 보니까 공감하시나 봐요. 저, 이상했어요?
(※ 아직 보그 걸 사이트에 영상은 올라오지 않았지만 보그걸에 인터뷰가 실렸기에 사진과 같이 올립니다.^^
영상은 사이트에 영상이 올라오는대로 올려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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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걸에 실린 잡지 인터뷰 전문]
V.G. 인터뷰 전에 과거 당신과 촬영의 추억을 공유했던 이들이 그때를 회상하며 한마디씩 던졌다. 다리가 유독 예뻐서 반바지 전문 모델이었다는 것. 유유히 연기하듯 포즈를 취했다는 것 등등 주지훈 내가 활동했을 땐 그야말로 모델의 황금기였다. 지금은 배우인 천희, 민기, 학영이도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멋진 준홍 형이나 윤주 누나도 있었고... 경쟁이 꽤 치열했지만 그만큼 재미있었고 성취감도 있었다.
V.G. 패션 화보 속 당신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운 건 비단 기자들 뿐만이 아닐거다. 주지훈 모델에서 배우로 넘어오는 길목에서 종종 중간자적인 입장에 놓이는 상황이 생기면서 나 역시 고민이 많았다. 예를 들어, '마왕'을 촬영할 때 친분있는 에디터들이 화보 촬영을 함께 하자고 하면 내 기분이 온통 암흑인데다 캐릭터의 이미지도 유지해야 하니까 컨셉트가 안 맞으면 피치 못하게 거절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거다. 변한 건 아닌데 변했다는 소리도 듣기 싫고, 서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는 건데 내가 몸 사리며 소홀이 하게 되는 건 더욱 싫고, 미안한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선을 그을 수 밖에 없었다. 눈 앞의 이득이나 인맥을 생각했다면 어떻게든 했겠지만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본래의 내 모습을 유지하며 배우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V.G 모델로 활동한 이력은 배우로 사는 삶에 좋은 자양분이 되나? 주지훈 내겐 모델과 배우가 크게 다르지 않다. 숨이 길고 짧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컵을 잡는 게 사진 속에 담기는 마지막 포즈라면
난 그 전에 어떤 각도로 팔을 뻗고 어떤 감정으로 컵을 잡을 건지 생각하고 연기했다. 그래서 당시에 모델 후배들에게도 연기 학원에 다니라고 조언했었고, 셔터 소리에 맞춰 포즈를 바꾸는 버릇이 몸에 배어 있다 보니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도 테이크가 바뀔 때마다 뭔가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긴 했다. 진짜 중요한 건 새로운 동작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걸 점차 알게 되면서 계산하는 버릇 역시 줄어들었지만.
V.G 모델 시절에 막연히 상상했던 배우의 이미지가 있을 것 아닌가. 상상과 실제의 차이는 어떤가? 주지훈 모델일 때 연기자와 함께 촬영하거나 쇼에 설 때가 종종 있었는데, 아무리 노련한 모델이라도 연기자가 오면 온 스태프들이 그에게 더 관심과 정성을 쏟더라. 그게 좀 불합리하다 싶었고 연예인이 되면 굉장히 편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되어보니, 뭐 그렇지도 않더라(웃음).
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일장일단이 있다.
V.G 요즘 지뢰처럼 터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배우로 사는 삶이 결코 편치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지훈 사람들의 시선이나 불필요한 신경들이 내겐 특별히 못 견디게 불편한 요소는 아니다. 스케줄이 없을 땐 매니저 없이 혼자 번화가를 유유히 다니곤 하니까. 모델일 땐 그렇게 살았는데 얼굴이 좀 더 알려졌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숨어야 하는 까닭도 잘 모르겠고,
사실 그냥 다니면 아무도 내가 주지훈인 줄 모른다. 지난 주말에는 이대 근처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학교 앞 벤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거짓말 안하고 아무도 날 못 알아봤다(웃음).
V.G 작품이 아니면 당신을 볼 기회가 없으니 눈에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예능 프로그램은 고사하고 토크쇼에서도 사적인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으니... 주지훈 내겐 그런 자리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 만한 재주나 특기가 없다. 언젠가부터 게스트를 진심이 아니라 재미의 수단으로 여기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도 영 적응하질 못하겠고.
V.G 그러니까 차갑고 이성적일 거라는 선입견 같은 게 생기는거다. 주지훈 방금 말한 것 말고 또 뭐가 있나? 난 그런 거 잘 모른다.
V.G 말수가 적을 것 같다는 얘기도 있다. 주지훈 그건 정말 아닌데. 친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땐 말을 많이 하다 못해 수다스러울 정도다. 오죽하면 별명이 '아줌마'겠나. 만나면 말이 많은데 문제는 거의 밖에 안 나간다는 거다. 큰일 아니면 전화를 걸지도 않는다. 휴대폰이 있긴 하지만 일할 땐 진동이고 대부분 무음 상태다. 타이밍이 맞으면 전화를 받고 나중에 부재중 전화를 확인해도 다시 전화를 하지 않는다. 정말 급한 거면 상대방이 다시 전화를 걸겠지.. 그렇게 살다보니
내게 전화하는 건 정말 친하다고 할 수 있는 몇몇 사람들 뿐이다. 은연중에 인간관계가 정리된 거지.
V.G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는 건 어떤가? 친구가 없을 것 같진 않지만 굳이 일부러 만남을 청할 것 같진 않다는 것도. 주지훈 난 약속이라는 걸 못한다. 누군가와 내일 7시에 저녁 먹자고 약속한다면 그 시간까지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한다. 혹 그 사이에 더 중요한 일이 생겨 못 나가게 되면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해야 하고, 그런 민망한 상황이 생기는 게 너무 싫다. 하지만 나와 친한 사람들은 내 심리를 잘 아니까 편하다. 그들에게는 그냥 거리를 걷다 배가 고파지면 "밥 먹을래?"하고 전화를 걸고, 상대방 역시 "나도 근처에 있는데, 먹자!"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루어지는거다.
V.G 그런 맥락이라면 붐비는 곳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말도 맞을 법한데. 주지훈 일부러 싫어하진 않는다. 하지만 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과 사람 없고 조용한 곳 중에 고른다면 당연히 후자다.
V.G 화나는 일이 있어도 조용히 분을 삭이진 않나? 주지훈 화는 잘 낸다. 단, 친한 사람에게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한 사람에게 후하게 대하는데, 난 그 반대다. 친구들은 그걸 잘 아니까 내가 화내도 그러려니 한다. 친구들에게도 말 못할 정도로 화나는 일이 있으면 혼자 술 마신다. 예전에 내가 살던 집 앞에 작은 선술집이 있었는데 워낙 자주 가다 보니 혼자 들어가면 내가 좋아하는 술과 안주가 바로 세팅된다.
V.G 스케줄이 없는 날엔 어떻게 하루를 보내나? 왠지 당신에겐 일상의 시계가 느리게 갈 것만 같다. 주지훈 한량처럼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선 담배 한 대 피우고 조금씩 몸을 움직이다가 점심을 먹고 DVD를 한 편 본다. 영화관에 가고 싶을 땐 심야 영화를 보기도 하고, 그 외에는 그냥 이것저것 생각하며 가만히 앉아 있는다. (V.G 주로 무슨 생각을 하나?) 요즘 많이 한 생각은 '어서 커튼을 달아야 하는데...'였다. 그렇게 생각만 한지 8개월로 접어들었지만.
V.G 작품을 선택할 때도 그렇게 나무늘보 정도의 속도로 하나? 주지훈 하하. 아니, 그건 빛의 속도로 한다. 내게 들어온 시나리오는 전부 소설 읽듯 계속 보는데, 어느 순간 그때의 내 상태나 기분과 동일시되는 부분이 눈에 들어오면 그땐 주저없이 결정을 내린다. 그 캐릭터와 내가 완전히 동일시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을 믿는거다. 난 내게 모두가 인정할 만한 연기력이나 아이돌이 가진 스타성 같은 게 없다는 걸 잘 안다. 그 부족함을 메울 수 있는 건 진실성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나 자신과 닮은 캐릭터라면 그 진실에 좀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게 내 작품 선택의 기준이다.
V.G <서양골동양과자점-앤티크(이하 앤티크)>의 진혁을 선택한 것 역시 자신의 접점을 찾았기 때문인가? 주지훈 난 매일 혼자 집에만 있고 전화도 하지 않지만 사람들과 만나면 나름대로 아무렇지 않게 쾌활한 사람이다. 간혹 남들이 어떤 게 진짜 네 모습이냐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질 못했는데, 흑과 백의 모습을 지닌 진혁을 보고 그를 통해 내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V.G 결국 그 선택은 옳았나?) 엉켰던 실타래가 조금 풀린 듯한 느낌은 든다. 잘은 몰라도 분명 뭔가 후련해졌다.
V.G 작품 사이의 간격이 꼭 1년씩이다. '궁' 이후 갑작스레 받았던 주목을 이어나가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 텐데, 그만큼 신중을 기하고 싶었던 건가? 주지훈 사실 '궁'과 '마왕' 사이에 하려던 작품이 있었는데, 제작이 안 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 편이 나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쉼 없이 달렸다면 3년쯤 지난 지금, 이렇게 편한 맘으로 인터뷰하고 있진 않을 것 같다. 내게 미래는 늘 불안한 존재다. 군대도 가야 하고. 하지만 최근의 두 작품 때문에 조금은 현재를 즐겁게 살 힘을 얻었다. <앤티크>를 하면서 난 연기하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고, 차기작인 <키친>을 하면서는 신이 나서 촬영한다는 게 뭔지를 경험했다. 예전에는 굉장히 송곳같은 사람이었는데 점점 둥글둥글해지는 느낌이 든다.
V.G <앤티크>도 '궁'에 이어 만화가 원작인 작품이다. 주지훈 시나리오 읽고 연이어 원작을 봤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독파했다. 4권 전체가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아서 읽는 내내 귓불이 간질간질했다. 만화인데도 너무 만화같지 않은 사건들과 현실적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도 맘에 들었고, '궁'은 온라인을 통해 본 독자들이 워낙 많았는데, <앤티크>는 그 정도는 아니어서 부담감도 좀 덜했다.
V.G 케이크같은 단 음식, 평소에는 별로 안 좋아했을 것 같은데. 주지훈 이건 영화 속 대사이기도 한데, 한마디로 "남자가 무슨 케이크"(웃음). 하지만 영화를 촬영하면서 전에 몰랐던 케이크의 세계에 새롭게 눈떴다. 이름도 종류도 맛도,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케이크가 있던데! 오페라라는 이름의 달디 단 케이크가 제일 맛있고, 치즈가 들어간 케이크는 뭐든 실패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평생 먹을 케이크를 이번 촬영하면서 다 먹은 것 같다. 그땐 몸이 너무 피곤하니까 당분이 더 당기기도 했고.
V.G 자신의 취향에 있어서 호불호가 분명할 것 같다. 아무래도 패션에 관해선 더욱 그렇지 않나? 주지훈 정반대다. 모델 친구들은 다들 패션에 열광하는데, 난 별로 관심이 없다. 어차피 촬영 가면 어련히 알아서 멋진 옷 입혀주는데 뭐.
V.G 촬영 때 그렇게 입었으니 일상에서도 비슷하게 입고 싶은 거 아닌가? 주지훈 일할 때 그렇게 입었으니 굳이 일상에서까지 챙겨 입을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거다. 패션의 시작은 남들에게 멋지게 보이고 무리 속에서 돋보이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자기 만족도 있겠지만, 무인도나 사막에 있다면 그렇게 옷을 사겠나? 난 어차피 보여지는 직업을 갖고 있는 건데, 일상에서라도 그런 촉수를 좀 접고 싶다.
V.G 트렌드를 좇고 특정 디자이너의 라인에 감탄하고, 그런 건 더욱 없겠지? 주지훈 그런 게 다 뭔가(웃음)? 길 가다 맘에 드는 옷이 보이면 사긴 한다. 하지만 일부러 트렌드를 찾아보거나 그런 건 없다. 모델을 워낙 오래 했으니 나도 모르게 안목이 생긴 것 같긴 하다. 해외에 가면 눈에 들어오는 옷을 몇 벌 사는데, 그 아이템들이 몇 달 후에 한국에서 유행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근데 그게 아이돌 그룹과 연관되면 상황이 좀 우스워진다. 페도라도 그렇고 특히 하이톱 스니커즈같은 건 빅뱅이 신기 6개월 전부터 일본에서 사와서 잘 신고 다녔는데,
갑자기 그들이 유행시켜놓으니 당황스러워졌다. 지금 내가 그걸 신고 나간다면 누구나 내가 빅뱅을 따라 한 것으로 알 테니까.
V.G 특별히 좋아하는 브랜드도 없나? 주지훈 알고 있는 브랜드 자체가 그리 많지 않다. 모두가 아는 프라다나 구찌, 질 샌더 정도. (V.G 당신에게 그림처럼 어울렸던 디올 옴므는?) 아, 좋아하지만 이젠 못 입는다. 그걸 자신있게 소화할 몸이 못 된다. (V.G 설마...) 근육 운동을 잘 못해서 전보다 몸이 두꺼워졌다. 한번 생긴 근육은 없애기가 힘들다더라. 가끔 거울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어서 한숨이 나올 때도 있다.
V.G 왠지 별다른 관리를 하지 않아도 꾸준히 마른 몸을 유지할 것 같은데.. 주지훈 이거, 찐 건데. (V.G 자꾸 그런 망언을 하면 곤란하다.) 정말이다. <키친> 촬영 끝나고 한 달 만에 5kg이 쪘다. 스물 두 살 정도까진 정말 살이 안 쪘는데 지금은 슬프게도 먹는 대로 살이 찐다. 그런 걸 보면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싶다(웃음). 여태껏 신경 예민하고 날카로운 캐릭터를 주로 맡다 보니 날렵한 이미지가 필요해서 촬영 들어가기 전에 열심히 다이어트를 했다. 하지만 작품이 끝나고 나면 아무래도 느슨해져서 이전과 6~8kg 정도 차이가 난다.
V.G 당신의 홈페이지에 가니 메인 화면이 필름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디카 붐이 일기 전부터 사진을 찍어오지 않았나? 주지훈 난 만날 보는 게 사진이니 오히려 관심이 없었는데, 다른 모델 친구들은 사진에 꽤 관심이 많았다. 내게 사진을 가르쳐 준 사람도 (예)학영이다.
색감이 맘에 들어서 처음부터 필름 카메라로 찍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V.G 보유하고 있는 기종은 뭔가? 주지훈 콘탁스 T3과 G2, 라이카 M6과 M3, 니콘 FM2. (V.G 장만하려면 비용이 상당히 들었겠다.) 다 팬들에게서 선물받았다. 신기한 게 어디 가서 카메라 사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다들 어떻게 알았는지 카메라들이 순차적으로 배달됐다(웃음). 그중 T3과 G2를 주로 사용하고, 디지털 카메라는 리코 GR-D2 하나만 쓴다. 수동 조절도 가능해서 촬영 현장에서는 주로 리코로 많이 찍었다. 요즘은 필름을 한꺼번에 현상하는 것에 재미를 들였다. 잊고 있던 기억을 오래전 필름을 현상하며 되살리는 기분이 좋다.
V.G 찍히기만 하다가 찍는 입장이 되어보니 어떤가? 주지훈 세상을 좀 더 제대로 볼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 없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봤는데, 사진을 찍고 나서부터는 작고 아름다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 습관이 삶에도 조금씩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옛날엔 예술 영화같은 건 지루하고 어려워서 질색이었는데, 요즘은 재미없는 영화가 없어졌다. 이 영화는 음악이 너무 아름답고, 저 영화는 세트가 남다르구나,하는 식으로 그 속에 담긴 각자의 장점을 찾기 시작했다.
V.G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토바이 타는 걸 즐겼다고 들었다. 하지만.. 주지훈 아, 그게... 그렇다. 이제 오토바이는 타지 않는다.
뭐라고 해야 하나...(한참 있다) 언이의 일 이후로 어차피 한 번 뿐인 인생인데 너무 애쓰지 말자던 생각이 확고해졌다. 하고 싶은 일은 즐겁게 하고, 하기 싫은 일은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배우라는 직업은 내 선택이고, 대중의 관심을 받는 울타리도 결국 내가 원해서 들어와 있는거니까 불평은 하지 말자고 나 자신에게 되뇐다. 큰 욕심도 버리자고 생각한다. 돈도 많이 벌고 좋은 차도 사고 큰 집에서 사는 것도 좋겠지만, 그걸 위해서 바득바득 올라갈 맘이 사라진 거다. 모델 일할땐 그런 게 있었다. 외롭고 힘들어도 이를 악물로 최고의 모델이 되고 싶다는 생각.
V.G 그땐 지금보다 어렸지 않나. 먼 곳을 내다보기에는 눈앞의 결과에 일희일비할 나이이기도 했고... 주지훈 열 아홉살 때 모델 일을 시작했는데 두 달 정도 해보니 부족한 게 너무 많아 보였다. 그래서 우선 그만 두고 2년 정도 더 준비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 서울 컬렉션에 서게 됐고, 그걸 본 <GQ>에서 경력이 없는 날 불러서 12페이지 화보를 촬영하게 해줬다. 바보가 아닌 이상 분위기를 보면 알지 않나? 대단한 스태프들이 모여 나만 바라보고 있으니 칼럼을 망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죽을 각오로 잘해야 다음에도 또 이런 촬영에 불러줄 거라는 것도. 그렇게 욕심이 났고, 잘하고 싶으니까 포즈도 공부하게 됐고, 그러다보니 자신감도 조금씩 붙게 됐다.
V.G 그때의 자신감은 지금도 여전한가? 주지훈 사실 과거의 난 자신감이 아니라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집이 여유롭지 못해서 용돈이 거의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 내내 용돈이 차비 포함해서 하루에 1천원이었다. 당시 차비가 5백원이었으니, 말도 못하게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문화나 예술의 혜택을 느껴볼 새가 없었다. 여윳돈이 생긴다 해도 돌도 씹어먹을 나이에 뭔가를 사먹지, 음반 사고 공연 보러 가겠나? 그러다 모델 세계에 와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저들보다 감성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잘한다 소리를 들으면 내가 나쁘진 않았구나 싶으면서도 왠지 완벽에는 못 미치는 것 같았고, 어느 정도 인정받기 시작한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허리를 펼 수 있었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V.G 인터뷰가 막바지에 다다르는 지금, 어떤 생각이 드나? 주지훈 인터뷰는 어렵다는 것. 내 머릿 속에 있는 걸 정확히 전달하고 싶은데 감정을 언어로 풀어 제대로 표현하는 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단어 하나만 바뀌어도 의미가 달라지니 인터뷰를 하며 진심을 전하기란 무척 어렵다. 하지만 반대로 인터뷰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누군가 반짝이는 눈빛을 하며 내 얘기를 전적으로 들어줄 기회가 또 있을까 싶다. 대화를 하다보면 대부분 논쟁이 생기게 마련인데 인터뷰는 가만히 들어만 주니까 더 즐겁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지만 해소도 되고, 고해성사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V.G 인터뷰이가 그렇게 의미 부여해주는 것도 에디터의 입장에서는 참 고맙다. 주지훈 매거진 인터뷰가 내겐 가장 편하다. 다른 매체들은 너무 가십만 노리고 없는 얘기도 멋대로 지어서 쓴다. 메인 요리를 위해 에피타이저를 내놓았는데, 그들이 보기에 에피타이저가 더 맛있겠다 싶으면 메인 요리는 맘대로 버리는 거다. 이젠 말도 안 되는 기사를 봐도 화조차 나질 않는다. 상처받기 시작하면 끝도 없으니까. 아, 매거진 인터뷰는 그런 것도 재미있다. 나중에 기사를 보면 그 에디터가 인터뷰이에게 호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
V.G 무서운 말이다! 나 역시 들키는 건가? 하하하.. 그런데 뭘 보고 아는 건가? 주지훈 그건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분명히 보인다. 짧은 문자만 봐도 상대방의 감정을 알 수 있는데 하물며 이 장문의 글을 보고 모르겠나? (V.G 뭐, 들켜도 괜찮을 것 같다) 정말? 기대되는 걸. 아무튼 매거진은 내게 친정같이 편안한 존재다. 카메라 앞에서 치열하게 살다가도 다시금 돌아와 이렇게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으니.. 고마울 뿐이다. ⊙
★ 보그걸 사이트 - http://www.voguegirl.co.kr/
※ 출처 : 디씨 궁갤 / Gung7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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